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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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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중심의 창작지향 교육, 서울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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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설립자 故 동랑 유치진 선생 설립자 故 동랑 유치진 선생

예술이란 인류의 가장 오랜 문화유산이며 우리 민족 역시 세계 다른 민족과 같이 우리의 고유한 민족 예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founder ’S GREETINGS

설립자 故 동랑 유치진 선생
1905년 경남 거제시 출생 / 극작가, 연출가, 교육자
연보
1974
  • 향년 69세로 별세함(2월 10일). 연극인장으로 거행됨(2월 14일)
1973
  • 서울연극학교를 서울예술전문학교로 승격시킴
1971
  • 한국극작가협회장에 피선. 레퍼토리 극단 설립
1970
  • 문공부장관으로부터 한국연극 공로장 받음
1967
  • 제1회 3·1 연극상 수상
1966
  • 5· 16 민족상 이사에 피임
1965
  • 극단 드라마센터를 창립함
1964
  • 동아연극상, 3·1 문화상 심사위원
1963
  • 제10회 아시아 영화제 국제심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에 피임
1962
  • 드라마센터 건립. 한국연극연구소 초대 소장. 부설 연극아카데미 설립.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초대 회장. 예술원 부회장. 문화훈장 대통령장 수훈
1961
  • 제9차 ITI 대회 참석. 제7회 아시아 영화제 국제심시위원에 피선
1960
  • 동국대 연극과 초대 학과장. 문교부 대학교수 자격 심사위원 전국극장문화협회 회장에 피선
1959
  • 제8차 ITI대회에서 부의장에 피선
1958
  • ITI(International Theater Institute) 한국본부위원장 피선
1957
  • 세계연극 시찰 후 귀국
1956
  • 세계연극 시찰 위해 부인 심재순 여사와 함께 구미 각국, 동남아 순방
1955
  • 제1회 예술원상 수상
1954
  • 예술원 회원 피선 반공통일연맹 최고위원 한국문학가협회 부위원장피선
1950
  • 초대 국립극장장 취임
1947
  • 한국무대예술원 초대 원장 취입
1945
  • 〈산비둘기〉(朴在成 작) 연출 공연 중 해방 맞음
1935
  • 심재순(沈載淳)과 결혼
1931
  • 릿쿄 대학 영문과 졸업 졸업논문으로 「숀 오케이시 연구」 발표
1926
  • 릿쿄(立敎) 대학 예과에 입학
1925
  • 도야마 중학 졸업
1923
  • 광동대진재를 겪고 민족적 자각, 연극운동에 뜻을 둠
1921
  • 동경 도야마 중학 2년에 편입
1920
  • 3·1 운동 직후 도일
1918
  • 통영보통학교 졸업. 부산 체신양성소를 수료. 통영우편국 근무
1905
  • 11월 19일(음력) 경남 거제 둔덕에서 태어남
 
 
 

동랑 선생은 침체된 민족예술의 발현을 시대적 소명으로 자각하여 평생을 문화 예술계와 연극계에 헌신하였다. 1931년에 창립한 극예술연구회를 통해 민족 예술의 토대를 다지고, 1961년에 드라마 센터와 한국연극연구소 및 부설 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한국 연극의 장을 새롭게 열어 오늘의 서울예술대학교가 있게 하였다.

“예술이란 인류의 가장 오랜 문화유산이며 우리 민족 역시 세계 다른 민족과 같이 우리의 고유한 민족 예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예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건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 삼국 가운데서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예술이 가장 뒤떨어져 있는 형편입니다. 한국예술연구소를 세운 동기도 바로 이 후진성을 극복하여 우리 민족예술을 세계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어서 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예술자료와 정보의 관리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국예술연구소 건물 안에 설비된 드라마센터와 학교, 도서관이 이상의 세 가지 일을 서로 보완하면서 각각 담당할 것입니다. 많은 예술 지망생과 유능한 교수, 예술가들이 본 연구소에 모여 있으며 또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들의 장래에 적지 않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 시절부터 나의 꿈이며 모든 예술 동지들의 꿈입니다. 원컨대 이 꿈이 우리 연구소를 온상(溫床)으로 하여 우리 민족 예술 재건의 발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