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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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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학자 유덕형 창학자 유덕형

이제는 우리의 독자적 리듬과 에너지(빛), 나아가서는 보다 근원적인 우리 특유의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establisher ’S GREETINGS

창학자 유덕형
연출가, 예술총감독, 교육가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이사장 역임
 

미국 연극계에 주목을 받다

창학자 유덕형은 1963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1968년 미국 Trinity 및 Yale University에서 수학한 후, 미국 록팰러 재단, Ford 재단에서 장학금 및 창작기금을 받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연출․조명․디자인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예술계․교육계 및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Dallas Theatre Center에서 공연된 "라생문" (희곡 Fay and Michael Kennin) 공연을 통해서 연출과 무대미술, 조명과 의상을 모두 담당하며 미국 평단과 언론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활동 주요작품
 
"A Different Drummer" 무대조명 (Dallas Theatre Center)
“Acting Mime” 연출 (Dallas Theatre Center)
“Red Indians” 무대조명 (Dallas Theatre Center)
“Dr. Faustus" 무대미술 (New York A.P.A Production)
"Madam Butterfly" 무대의상 (Long Island Opera Group)
"The Dance" 연출 (Dallas Theatre Center)
"My Brothers' Keeper" 연출 (Dallas Theatre Center)

우리 연극계에 연출가의 영역을 구축하다

1969년 유덕형은 한국으로 돌아와 드라마센터에서 ‘유덕형 연출작품 발표공연’을 가지며 "갈색머리카락" (김종달 作), " LITHUANIA" (Rupert Brooks 作), "자아비판" (유치진 作)을 차례로 연출하며 희곡이 가진 제약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으로 치환된 연출 중심의 새로운 공연 스타일을 선보였다.
1969년 유덕형의 출현은 한국 연극사의 일대 변혁적인 사건으로, 유덕형은 당시 화술 중심의 국내 연극의 흐름을 시각적, 청각적, 감각적인 의미전달, 연출가의 미학을 중시하는 ‘창조적 연출가’ 중심의 연극을 탄생시켰다. 또한, 유덕형의 연출작업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상상력, 실험정신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그리고 유덕형의 작품 화두인 ‘전통’ 과 ‘실험’은 곧 1970년대 한국 연극의 화두가 되었다. 그의 작업은 이후 1970년 "미친동물의 역사" (윤대성 作), "Birthday Party" (Harold Pinter 作) 연출(드라마센터)로 이어지며 점차 연출의 형식미를 구축했다.

국제적 연출가로 인정받다

1971년 11월 국제극예술협회 제3세계 연극제(필리핀, 마닐라)에 초청된 유덕형은 본인이 각색한 “알라망”을 연출함으로써 그의 연출 및 작품을 세계에 알렸으며, 필리핀 극단 칼리낭간 앙상블을 예술적 성취로 이끌어낸 문화교류의 공로를 인정받아 마닐라 시장의 표창을 받았다.
이 작품을 본 국제극예술협회 명예회장 ‘로자몬드 길더’ 여사와 각국 대표들은 이번 연극제의 베스트 프로덕션이 ‘알라망’이라고 입을 모아 극찬했다. 평론가 ‘셀소 카루눙간’씨도 마닐라 타임즈(11월 30일자)에서 “유덕형씨가 연출한 알라망은 최근 몇 해 동안 전 세계를 통해 볼 수 없었던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이며, 또한 막다른 길에 이른 서구 연극이 동양의 전통예술에서 활기를 찾으려는 꿈이 이루어졌다”고 극찬하였다.
유덕형은 1974년 뉴욕 LaMaMa E.T.C에서 연출한 “Jilsa”로 세계적인 연출가 피터브룩으로부터 “새로운 연극이 찾고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격찬을 받았고 소호 위클리 뉴스는 “제의적 동작, 극소화시킨 무대, 탁월한 시각효과, 뛰어난 음악, 보기 드문 공연”이라는 호평을 이례적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1974.2.24)

한국인 최초 냉전시대 소련에 입국하여 예술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다

1973년 국제극예술협회 제15차 연극대회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한국과는 미수교국인 적대적인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유덕형은 이미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국제극예술협회 제3세계 분과위 상임위원이라 소련 당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와 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을 그대로 안고 있는 한국인이 과연 소련에 입국해서 북한의 방해공작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는가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있을 때 소련의 입국비자가 떨어진 것이다. 5월 26일 유덕형은 소련에 입국해서 국제연극회의에 참가했다. 한국인이 소련의 입국사증을 정식으로 받아 모스크바에 들어간 것은 유덕형이 처음이었고 이 사건은 한 ․ 소관계의 획기적인 변화의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유덕형은 새로움에 대한 관심, 혁신에 대한 신념으로 남․북간의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예술로 넘어선 것이다.

공연예술 및 문화예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다

유덕형은 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부위원장,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ASSTEJ) 한국본부 이사, 예술의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위원, 한국방송공사 자문위원,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문화식전국장, 서울올림픽 폐회식 제작단장, 대전엑스포 전문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 및 무대공연물전문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예술의전당 비상임이사, 재단법인 장은공익재단 이사, 예술의전당 자문위원, 서울월드컵 문화행사 축제기획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공연예술 및 문화예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